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.20 사건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린뱌오와 장칭은 천짜이다오를 반혁명 괴수로 몰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오쩌둥은 천짜이다오를 동지로 표현하며 관대한 처분을 내릴 것을 지시하였다. 이 덕분에 천짜이다오는 군구 사령관에서 해임된 것 이외에는 특별한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[[9.13 사건]]으로 [[린뱌오]]가 사망한 이후 1973년에 복권되어 다시 직무를 보았다. 이 사건으로 중앙문혁소조의 급진파들은 전국의 보수파와 수정주의자들을 공격해기 시작했다. 장칭은 쉬샹첸, 쉬하이둥 등 원로들을 7.20 사건의 배후로 몰아 비판했다. 7월 22일, 장칭은 하남성의 홍위병들을 상대로 "문장으로 공격하고 무력으로 방어해야 한다."고 주장하며 무장투쟁을 호소했고 조반파는 외교부, 국무원 등 국가기관까지 무력으로 장악하려 하면서 더욱 급진화되었다. 특히 관펑과 왕리 등이 주도한 외교부 장악 시도는 혁명외교의 과격화를 낳아 1967년 [[주중 영국 대표부 점령 사건]]을 야기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